문항별 문제·해설 20문항
문제 01대가야
밑줄 친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5세기 후반 가야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한 이 나라는 낙동강 유역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풍부한 철을 활용하여 후기 가야 연맹의 맹주가 되었다.
- ①진흥왕에 의해 멸망하였다.정답
- ②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하였다.정답
- ③지방 행정 구역을 5경 15부 62주로 나누었다.정답
- ④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남진 정책을 추진하였다.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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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①입니다. 5세기 후반 후기 가야 연맹의 맹주로 성장한 「이 나라」는 고령의 대가야입니다. 금관가야가 4세기 말~5세기 초 고구려의 공격으로 약해지자 대가야가 중심이 되었으며, 562년 신라 진흥왕(이사부)에게 멸망하였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대가야는 신라 진흥왕 때 멸망하였으므로 옳습니다.
② 사비 천도와 남부여 국호는 백제 성왕의 업적입니다.
③ 5경 15부 62주는 발해의 지방 행정 구역입니다.
④ 평양 천도와 남진 정책은 고구려 장수왕의 업적입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가야는 「전기 = 김해 금관가야(532년 법흥왕에게 병합), 후기 = 고령 대가야(562년 진흥왕에게 멸망)」로 짝지어 기억합니다.
문제 02고려의 경제
고려의 경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①진대법이라는 구휼 제도를 시행하였다.정답
- ②건원중보가 발행되었으나 널리 이용되지 못하였다.정답
- ③광산 경영 방식에서 덕대제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정답
- ④전통적 농업 기술을 정리한 「농사직설」이 편찬되었다.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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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②입니다. 고려 성종 때 우리나라 최초의 철전인 건원중보가 발행되었으나, 자급자족적 경제 구조 때문에 널리 유통되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숙종 때 해동통보, 활구(은병) 등도 만들어졌으나 일반 거래에서는 여전히 곡식과 삼베가 많이 쓰였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진대법은 고구려 고국천왕 때 을파소의 건의로 시행된 빈민 구제 제도입니다.
② 고려 성종 때의 건원중보에 대한 설명이므로 옳습니다.
③ 덕대제(광산 경영 전문가가 물주의 자본으로 광산을 운영)는 조선 후기에 유행하였습니다.
④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우리 실정에 맞는 농법을 정리해 편찬한 농서입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경제사 문제는 각 제도의 시대를 먼저 붙입니다. 진대법(고구려), 건원중보·해동통보·활구(고려), 농사직설(조선 전기), 덕대제·설점수세(조선 후기)입니다.
문제 03조선책략과 영남 만인소
다음 자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조선이라는 땅덩어리는 실로 아시아의 요충을 차지하고 있어 그 형세가 반드시 다툼을 불러올 것이다. 조선이 위태로우면 중동(中東)의 형세도 위급해진다. 따라서 러시아가 강토를 공략하려 한다면 반드시 조선이 첫 번째 대상이 될 것이다. … (중략) … 러시아를 막을 수 있는 조선의 책략은 무엇인가? 오직 중국과 친하며,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합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하는 길뿐이다.
- ①강화도 조약 체결 이전 조선에 널리 퍼졌다.정답
- ②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정답
- ③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정답
- ④청에 영선사로 파견된 김윤식에 의해 소개되었다.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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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③입니다. 러시아를 막기 위해 「중국과 친하고(親中國), 일본과 맺고(結日本), 미국과 연합해야(聯美國) 한다」는 내용은 청의 외교관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입니다. 1880년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이 들여와 유포되자, 1881년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이 이를 비판하는 영남 만인소를 올렸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조선책략은 강화도 조약(1876) 이후인 1880년에 들어왔습니다.
② 척화비는 신미양요(1871) 직후 흥선 대원군이 세웠으므로 조선책략과 관계가 없습니다.
③ 영남 만인소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므로 옳습니다.
④ 조선책략을 들여온 사람은 영선사 김윤식이 아니라 제2차 수신사 김홍집입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친중국·결일본·연미국」 = 조선책략 → 김홍집(2차 수신사, 1880) → 영남 만인소(이만손, 1881) →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의 흐름으로 정리합니다.
문제 04임오군란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가)에 들어갈 말로 옳은 것은?
정부의 개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구식 군인과 도시 하층민이 반발하였다. 제대로 봉급을 받지 못한 구식 군인들이 난을 일으키고 도시 하층민이 여기에 합세하였으나 청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후 청은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조선의 내정에 개입하였다. 또 (가) 을 체결하여 조선이 청의 속방임을 명문화하고 청 상인의 내륙 진출을 인정받았다.
- ①한성 조약정답
- ②톈진 조약정답
- ③제물포 조약정답
- ④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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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④입니다. 구식 군인의 봉급 문제로 일어나 청군에게 진압된 사건은 1882년 임오군란입니다. 이후 청은 조선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여 조선이 청의 속방임을 명시하고, 청 상인의 한성 개잔(점포 개설)과 내륙 통상을 인정받았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한성 조약(1884)은 갑신정변 이후 조선과 일본이 맺은 조약으로, 배상금 지불과 공사관 신축 비용 부담을 정하였습니다.
② 톈진 조약(1885)은 갑신정변 이후 청과 일본이 맺은 조약으로, 양국 군대의 공동 철수와 파병 시 사전 통보를 정하였습니다.
③ 제물포 조약(1882)은 임오군란 이후 조선과 일본이 맺은 조약으로, 일본 공사관 경비병 주둔을 인정하였습니다.
④ 청의 속방 명문화와 청 상인의 내륙 진출을 규정하였으므로 옳습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임오군란 이후 조약은 「일본과 = 제물포 조약, 청과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갑신정변 이후는 「조선·일본 = 한성 조약, 청·일본 = 톈진 조약」으로 나누어 기억합니다.
문제 05위화도 회군 이후의 사실
위화도 회군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 ①과전법이 실시되었다.정답
- ②정몽주가 살해되었다.정답
- ③한양으로 도읍을 이전하였다.정답
- ④황산 대첩에서 왜구를 토벌하였다.정답
5번 정답·해설 펼치기5번 정답·해설 접기
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④입니다. 위화도 회군은 1388년입니다. 이성계가 황산 대첩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것은 그보다 앞선 1380년(우왕 6)이므로 회군 이후의 사실이 아닙니다.
보기별 검토
① 과전법은 1391년(공양왕 3)에 실시되었으므로 회군 이후입니다.
② 정몽주는 1392년 이방원 세력에게 선죽교에서 살해되었으므로 회군 이후입니다.
③ 한양 천도는 조선 건국 후인 1394년(태조 3)이므로 회군 이후입니다.
④ 황산 대첩(1380)은 회군 이전의 일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고려 말 이성계의 행적은 「홍건적 격퇴 → 황산 대첩(1380) → 위화도 회군(1388) → 과전법(1391) → 정몽주 피살·조선 건국(1392) → 한양 천도(1394)」 순서로 정리합니다.
문제 06장지연과 시일야방성대곡
다음의 논설을 작성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이 날을 목 놓아 우노라[是日也放聲大哭]. … (중략) … 천하만사가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많지만, 천만 뜻밖에 5개조가 어떻게 제출되었는가. 이 조건은 비단 우리 한국뿐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할 조짐을 점차 만들어 낼 것이니 이토[伊藤] 후작의 본의는 어디에 있는가?
- ①「한성순보」를 창간하였다.정답
- ②「한국통사」를 저술하였다.정답
- ③「독사신론」을 발표하였다.정답
- ④「황성신문」의 주필을 역임하였다.정답
6번 정답·해설 펼치기6번 정답·해설 접기
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④입니다. 「이 날을 목 놓아 우노라(시일야방성대곡)」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규탄하며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실은 논설입니다. 장지연은 황성신문의 주필로 활동하였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한성순보(1883)는 박문국에서 발간한 최초의 근대 신문으로, 장지연이 창간한 것이 아닙니다.
② 「한국통사」는 박은식이 저술한 역사서입니다.
③ 「독사신론」은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한 글입니다.
④ 장지연은 황성신문 주필로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었으므로 옳습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을사늑약 반대 언론 활동은 「장지연 – 황성신문 – 시일야방성대곡」으로 한 묶음입니다. 박은식(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 신채호(독사신론·조선상고사)와 구별합니다.
문제 07조선 성종 대의 편찬 사업
밑줄 친 ‘왕’의 재위 기간에 편찬된 서적으로 옳은 것은?
○ 왕은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을 설치하고 중단되었던 경연을 다시 열었다.
○ 왕은 훈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 세력을 등용하였다.
- ①대전통편정답
- ②동사강목정답
- ③동국여지승람정답
- ④훈민정음운해정답
7번 정답·해설 펼치기7번 정답·해설 접기
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③입니다.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 설치, 경연 재개, 훈구 견제를 위한 사림 등용은 조선 성종의 정책입니다. 성종 때 노사신 등이 각 도의 지리·풍속·인물 등을 정리한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대전통편」은 정조 때 편찬된 법전입니다.
② 「동사강목」은 영조·정조 때 안정복이 저술한 역사서입니다.
③ 「동국여지승람」은 성종 때 편찬되었으므로 옳습니다.
④ 「훈민정음운해」는 영조 때 신경준이 저술한 국어학 연구서입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성종 대 편찬물은 「경국대전 완성,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동문선, 국조오례의, 악학궤범」으로 묶어 외웁니다. 「대전○○」 형태의 법전은 조선 후기(속대전-영조, 대전통편-정조, 대전회통-고종)입니다.
문제 08김헌창의 난
밑줄 친 ‘반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웅천주 도독 헌창이 반란을 일으켜, 무진주ㆍ완산주ㆍ청주ㆍ사벌주 네 주의 도독과 국원경ㆍ서원경ㆍ금관경의 사신 및 여러 군현의 수령들을 위협하여 자신의 아래에 예속시키려 하였다.
ㄱ. 천민이 중심이 된 신분 해방 운동 성격을 가졌다.
ㄴ. 반란 세력은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하였다.
ㄷ. 주동자의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일어났다.
ㄹ. 무열왕 직계가 단절되고 내물왕계가 다시 왕위를 차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①ㄱ, ㄴ정답
- ②ㄱ, ㄹ정답
- ③ㄴ, ㄷ정답
- ④ㄷ, ㄹ정답
8번 정답·해설 펼치기8번 정답·해설 접기
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③입니다. 웅천주(공주) 도독 김헌창이 일으킨 반란(822, 헌덕왕 14)입니다. 김헌창은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켰으며, 나라 이름을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하였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ㄱ, ㄴ은 ㄱ이 틀립니다. 천민 중심의 신분 해방 운동은 고려 무신 집권기의 망이·망소이의 난, 만적의 난 등에 해당합니다.
② ㄱ, ㄹ은 둘 다 틀립니다. 무열왕 직계가 끊기고 내물왕계가 왕위를 차지한 것은 김헌창의 난보다 앞선 혜공왕 피살 후 선덕왕 즉위(780)의 결과입니다.
③ ㄴ(장안·경운), ㄷ(아버지 김주원의 왕위 계승 실패)이 옳으므로 정답입니다.
④ ㄷ, ㄹ은 ㄹ이 틀립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신라 하대 반란은 「김헌창의 난(822, 장안·경운) → 김범문의 난(825) → 장보고의 난(846) → 원종·애노의 난(889)」 순서와 특징을 함께 정리합니다.
문제 09병자호란
다음 사건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홍서봉 등이 한(汗)의 글을 받아 되돌아왔는데, 그 글에, “대청국의 황제는 조선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알린다. 짐이 이번에 정벌하러 온 것은 원래 죽이기를 좋아하고 얻기를 탐해서가 아니다. 본래는 늘 서로 화친하려고 했는데, 그대 나라의 군신이 먼저 불화의 단서를 야기시켰다.”라고 하였다.
- ①삼전도비가 세워졌다.정답
- ②이괄이 난을 일으켰다.정답
- ③인조가 강화도로 피난하였다.정답
- ④정봉수가 용골산성에서 항전하였다.정답
9번 정답·해설 펼치기9번 정답·해설 접기
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①입니다. 「대청국의 황제」가 조선을 정벌하러 왔다는 글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청 태종(한)이 보낸 국서입니다. 병자호란 이후인 1637년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였고, 1639년 청의 요구로 청 태종의 공덕을 기리는 삼전도비가 세워졌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이후에 세워졌으므로 옳습니다.
② 이괄의 난(1624)은 인조반정 이후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으로 일어난 것으로 병자호란 이전입니다.
③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한 것은 정묘호란(1627) 때입니다.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습니다.
④ 정봉수의 용골산성 항전은 정묘호란 때의 일입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후금(정묘호란, 1627) – 강화도 피난, 정봉수·이립」, 「청(병자호란, 1636) – 남한산성, 삼전도 항복」으로 두 호란을 구별합니다. 국호가 「대청」이면 병자호란입니다.
문제 10군사 제도의 변천
(가) ~(라)를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가)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었다. (나) 지방군은 10정으로 조직하였다. (다)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였다. (라) 중앙군은 2군 6위제로 운영하였다.
- ①(나) →(라) →(가) →(다)정답
- ②(나) →(라) →(다) →(가)정답
- ③(라) →(나) →(가) →(다)정답
- ④(라) →(나) →(다) →(가)정답
10번 정답·해설 펼치기10번 정답·해설 접기
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②입니다. (나) 지방군 10정은 통일 신라, (라) 중앙군 2군 6위는 고려, (다) 친위 부대 장용영은 조선 정조, (가) 13도 창의군은 1907년 정미의병 때 결성되어 1908년 서울 진공 작전을 벌였습니다. 따라서 (나) → (라) → (다) → (가) 순서입니다.
보기별 검토
① 13도 창의군(1907)이 정조 때의 장용영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② 통일 신라 → 고려 → 조선 후기 → 대한 제국 순서이므로 옳습니다.
③ 고려의 2군 6위가 통일 신라의 10정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④ 마찬가지로 (라)가 (나)보다 앞서므로 틀립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시기순 나열 문제는 각 항목에 왕조를 붙이면 바로 풀립니다. 9서당 10정(통일 신라), 2군 6위(고려), 5군영·장용영(조선 후기), 13도 창의군(대한 제국 말 의병)입니다.
문제 11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이후
밑줄 친 ‘이 회의’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미국, 영국, 소련 3국의 외무 장관이 모인 이 회의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적 임시 정부 수립과 이를 위한 미ㆍ소공동위원회의 설치,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 방안 등이 결정되었다.
- ①5ㆍ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정답
- ②좌우 합작 7원칙이 발표되었다.정답
- ③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되었다.정답
- ④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정답
11번 정답·해설 펼치기11번 정답·해설 접기
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③입니다. 미국·영국·소련 외무 장관이 모여 임시 정부 수립,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 최대 5년간 신탁 통치를 결정한 「이 회의」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입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는 1945년 8월 광복 직후 여운형 등이 결성하였으므로 회의 이전의 일입니다.
보기별 검토
① 5·10 총선거는 1948년에 실시되었으므로 회의 이후입니다.
② 좌우 합작 7원칙은 1946년 10월에 발표되었으므로 회의 이후입니다.
③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결성(1945. 8.)은 회의 이전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④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는 1948년 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정 이후 구성되었으므로 회의 이후입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광복 직후 흐름은 「건국 준비 위원회(1945. 8.) →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1945. 12.) → 1차 미·소 공위(1946) → 좌우 합작 7원칙(1946) → 5·10 총선거(1948) → 반민 특위(1948)」입니다.
문제 12익산 미륵사지
밑줄 친 ‘가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우리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善因)을 심어 이번 생에 뛰어난 과보를 받아 만민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삼보(三寶)의 동량(棟梁)이 되셨기에 능히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하셨다. 원하옵나니, 영원토록 공양하고 다함이 없이 이 선(善)의 근원을 배양하여, 대왕 폐하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며, 위로는 정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게 하소서.
- ①목탑의 양식을 간직한 석탑이 있다.정답
- ②대리석으로 만든 10층 석탑이 있다.정답
- ③성주산문을 개창한 낭혜 화상의 탑비가 있다.정답
- ④돌을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모전석탑이 있다.정답
12번 정답·해설 펼치기12번 정답·해설 접기
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①입니다. 왕후가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639)에 사리를 봉안했다는 내용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금제 사리봉영기입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의 양식을 간직한 백제의 석탑입니다.
보기별 검토
① 미륵사지 석탑은 목조 건축의 기법을 돌로 옮긴 석탑이므로 옳습니다.
② 대리석으로 만든 10층 석탑은 고려의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조선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입니다.
③ 성주산문을 개창한 낭혜 화상의 탑비는 보령 성주사지에 있습니다.
④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은 모전석탑은 신라의 분황사 모전석탑입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사택적덕의 딸, 기해년, 사리 봉안」은 미륵사지 사리봉영기의 핵심어입니다. 백제 석탑은 「미륵사지 석탑(목탑 양식) – 정림사지 5층 석탑」으로 기억합니다.
문제 13조선 세조의 정책
조선 세조 대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ㄱ. 사병을 혁파하였다.
ㄴ. 집현전을 폐지하였다.
ㄷ.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ㄹ. 6조 직계제를 시행하였다.
- ①ㄱ, ㄷ정답
- ②ㄱ, ㄹ정답
- ③ㄴ, ㄷ정답
- ④ㄴ, ㄹ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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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④입니다. 세조는 단종 복위 운동을 계기로 집현전을 폐지하고 경연을 중단하였으며,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6조 직계제를 다시 시행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따라서 ㄴ과 ㄹ이 옳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ㄱ, ㄷ은 둘 다 틀립니다. 사병 혁파는 태종,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때의 일입니다. 세조는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였습니다.
② ㄱ, ㄹ은 ㄱ이 틀립니다.
③ ㄴ, ㄷ은 ㄷ이 틀립니다.
④ ㄴ(집현전 폐지), ㄹ(6조 직계제)이 옳으므로 정답입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6조 직계제는 태종과 세조, 의정부 서사제는 세종 때 시행되었습니다. 경국대전은 「세조 착수 → 성종 완성·반포」로 시작과 완성을 구별합니다.
문제 14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
(가) ~(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한 사실이다. 이를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가) 한인애국단 창설 (나) 한국광복군 창설 (다) 국민대표회의 개최 (라) 주석ㆍ부주석제로 개헌
- ①(가) →(다) →(나) →(라)정답
- ②(가) →(라) →(다) →(나)정답
- ③(다) →(가) →(나) →(라)정답
- ④(다) →(나) →(가) →(라)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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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③입니다. (다) 국민대표회의는 1923년 임시 정부의 진로를 두고 창조파와 개조파가 대립한 회의입니다. (가) 한인애국단은 1931년 김구가 조직하였고, (나) 한국광복군은 1940년 충칭에서 창설되었습니다. (라) 주석·부주석제 개헌은 1944년 제5차 개헌입니다.
보기별 검토
① 한인애국단(1931)이 국민대표회의(1923)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② (가)가 맨 앞에 오고 (라)가 (나)보다 앞서므로 틀립니다.
③ 1923 → 1931 → 1940 → 1944 순서이므로 옳습니다.
④ 한국광복군(1940)이 한인애국단(1931)보다 앞서므로 틀립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임시 정부 개헌은 「대통령제(1919) → 국무령제(1925) → 국무위원제(1927) → 주석제(1940) → 주석·부주석제(1944)」입니다. 주요 사건 연도를 개헌 순서와 함께 기억하면 나열 문제가 쉬워집니다.
문제 15제1차 조선 교육령 시기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연표] 제1차 조선교육령 발표 ―――― (가) ―――― 제2차 조선교육령 발표
- ①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었다.정답
- ②근대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이 설립되었다.정답
- ③일본에서 2ㆍ8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정답
- ④보안회의 주도로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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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③입니다. 제1차 조선 교육령은 1911년, 제2차 조선 교육령은 1922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가)는 1911~1922년 사이이며, 일본 도쿄의 유학생들이 2·8 독립 선언서를 발표한 것은 1919년이므로 이 시기에 해당합니다.
보기별 검토
① 경성 제국 대학은 1924년에 설립되었으므로 제2차 조선 교육령 이후입니다.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② 육영 공원은 1886년에 세워진 근대 교육 기관으로 조선 교육령 이전입니다.
③ 2·8 독립 선언(1919)은 (가) 시기이므로 옳습니다.
④ 보안회의 황무지 개간권 반대 운동은 1904년의 일로 조선 교육령 이전입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조선 교육령은 「1차(1911, 보통학교 4년) → 2차(1922, 조선인·일본인 학제 동일화 표방, 대학 설립 가능) → 3차(1938, 조선어 선택 과목) → 4차(1943, 조선어 폐지)」로 연도와 특징을 함께 정리합니다.
문제 16고려 현종
(가)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강조의 군사들이 궁문으로 마구 들어오자, 목종이 모면할 수 없음을 깨닫고 태후와 함께 목 놓아 울며 법왕사로 옮겼다. 잠시 후 황보유의 등이 (가) 을/를 받들어 왕위에 올렸다. 강조가 목종을 폐위하여 양국공으로 삼고, 군사를 보내 김치양 부자와 유행간 등 7인을 죽였다.
- ①윤관이 별무반 편성을 건의하였다.정답
- ②외적이 침입하여 국왕이 복주(안동)로 피난하였다.정답
- ③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 지역을 획득하였다.정답
- ④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초조대장경 조판이 시작되었다.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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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④입니다. 강조가 목종을 폐위하고 김치양 일파를 제거한 뒤 왕위에 올린 (가)는 고려 현종입니다. 거란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2차 침입하였고, 현종은 부처의 힘으로 거란을 물리치려는 뜻에서 초조대장경 조판을 시작하였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윤관의 별무반 편성 건의는 숙종 때입니다.
② 국왕이 복주(안동)로 피난한 것은 공민왕 때 홍건적의 2차 침입 때입니다. 현종은 거란의 2차 침입 때 나주로 피난하였습니다.
③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것은 거란의 1차 침입 때인 성종 때입니다.
④ 초조대장경 조판은 현종 때 시작되었으므로 옳습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거란 침입은 「1차(성종, 서희 담판, 강동 6주) → 2차(현종, 강조의 정변 구실, 나주 피난) → 3차(현종, 강감찬 귀주 대첩)」로 왕과 함께 정리합니다.
문제 176·10 만세 운동과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사이
(가)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가) 순종의 인산일을 기하여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철폐하라!’, ‘일본인 지주에게 소작료를 바치지 말자!’ 등의 격문을 내건 운동이 일어났다. (나) 광주에서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사이에 일어난 충돌을 계기로 학생들이 총궐기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 ①신간회가 창설되었다.정답
- ②진단학회가 설립되었다.정답
- ③진주에서 조선 형평사가 창립되었다.정답
- ④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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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①입니다. (가)는 순종의 장례일에 일어난 1926년 6·10 만세 운동, (나)는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입니다. 그 사이인 1927년에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한 신간회가 창설되었습니다. 신간회는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신간회 창설(1927)은 (가)와 (나) 사이이므로 옳습니다.
② 진단 학회는 1934년에 설립되었습니다.
③ 조선 형평사는 1923년 진주에서 창립되었습니다.
④ 국채 보상 운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1920년대 민족 운동은 「형평 운동(1923) → 6·10 만세 운동(1926) → 정우회 선언(1926) → 신간회(1927) → 광주 학생 항일 운동(1929)」 순서로 묶어 둡니다.
문제 181930년대의 민족 운동
1930년대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 ①비밀결사인 조선건국동맹이 결성되었다.정답
- ②중국 관내에서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었다.정답
- ③연해주 지역에 대한광복군 정부가 설립되었다.정답
- ④서일을 총재로 하는 대한독립군단이 조직되었다.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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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②입니다. 조선 의용대는 1938년 김원봉이 중심이 되어 중국 관내 한커우에서 창설한 한국인 무장 부대입니다.
보기별 검토
① 조선 건국 동맹은 1944년 여운형이 국내에서 결성한 비밀 결사로 1940년대의 일입니다.
② 조선 의용대 창설(1938)은 1930년대의 일이므로 옳습니다.
③ 대한 광복군 정부는 1914년 연해주에서 이상설·이동휘 등이 세웠습니다.
④ 서일을 총재로 한 대한 독립 군단은 1920년 간도 참변 이후 밀산에서 조직되었습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무장 독립 단체는 연도를 함께 외웁니다. 대한 광복군 정부(1914), 대한 독립 군단(1920), 한국 독립군·조선 혁명군(1930년대 초), 조선 의용대(1938), 한국광복군(1940), 조선 건국 동맹(1944)입니다.
문제 19고려의 문화유산(건축)
밑줄 친 ‘이 나라’의 문화유산으로 옳지 않은 것은?
송나라 사신 서긍은 그의 저술에서 이 나라 자기의 빛깔과 모양에 대해, “도자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사람들은 비색이라고 부른다. 근래에 와서 만드는 솜씨가 교묘하고 빛깔도 더욱 예뻐졌다. 술그릇의 모양은 오이와 같은데, 위에 작은 뚜껑이 있고 연꽃이나 엎드린 오리 모양을 하고 있다. 또, 주발, 접시, 사발, 꽃병 등도 있었다.”라고 하였다.
- ①안동 봉정사 극락전정답
- ②구례 화엄사 각황전정답
- ③예산 수덕사 대웅전정답
- ④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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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②입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에서 비색 청자를 소개한 「이 나라」는 고려입니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은 조선 후기(숙종 때) 중건된 다포 양식의 중층 건물로, 고려의 문화유산이 아닙니다.
보기별 검토
①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현존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로 꼽히는 고려 시대 주심포 양식 건물입니다.
② 화엄사 각황전은 조선 후기 건축물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③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시대 주심포 양식 건물입니다.
④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고려 시대 주심포 양식 건물입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고려 목조 건축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주심포) / 성불사 응진전(다포)」으로 외웁니다. 금산사 미륵전, 법주사 팔상전, 화엄사 각황전은 조선 후기 건축입니다.
문제 20조선어 연구회
다음에서 설명하는 단체는?
○ ‘가갸날’을 제정하였다.
○ 기관지인 「한글」을 창간하였다.
- ①국문연구소정답
- ②조선광문회정답
- ③대한자강회정답
- ④조선어연구회정답
20번 정답·해설 펼치기20번 정답·해설 접기
정답: 공식 최종정답 기준 · 검수 방식
정답 근거
정답은 ④입니다. 1921년 조직된 조선어 연구회는 1926년 「가갸날」(한글날의 전신)을 제정하고, 1927년 기관지 「한글」을 창간하였습니다. 1931년 조선어 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를 제정하였습니다.
보기별 검토
① 국문 연구소는 1907년 대한 제국 학부 안에 설치된 국문 연구 기관으로, 주시경·지석영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② 조선 광문회는 1910년 최남선·박은식 등이 고전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③ 대한 자강회는 1906년 조직된 애국 계몽 단체로,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벌이다 해산되었습니다.
④ 가갸날 제정과 「한글」 창간을 한 단체이므로 옳습니다.
풀이 요령 · 관련 개념
풀이 요령: 국어 연구 단체는 「국문 연구소(1907) → 조선어 연구회(1921, 가갸날·한글) → 조선어 학회(1931, 맞춤법 통일안·우리말 큰사전 준비) → 조선어 학회 사건(1942)」으로 이어집니다.